살아가는 이야기(世間話)

김영철(용하31회)동문의 기고문--고향냄새가 물씬^^

별이(スバル) 2008. 3. 8. 17:01
[나의 살던 고향은] 김영철 (양구 송우리) 에디코 대표이사
“양구의 풍성한 자연은 벗이자 놀이터였다”
2008 년 03 월 06 일 목14:29:20 김영철
   
▲ 김영철 (양구 송우리) 에디코 대표이사

나는 1960년 양구군 남면 송우리에서 아버지 김재수, 어머니 최귀남 슬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봄이면 진달래 따먹고 부침개 해먹고, 어머니는 문창호지에 예쁘게 진달래꽃 붙이고 주전자 들고 딸기 따러 다니고 찔레 꺾어 먹으며 버들피리 불기도 했다.
이른 봄에 새싹들의 정겨움, 얼음 녹아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그립다.
여름에는 학교 갔다 오자마자 천연 수영장인 냇가로 나가 멱 감다가 추워지면 따뜻한 돌 위에서 몸 덥히고, 까만 고무신은 자동차로, 비행기로, 기차로 무궁무진한 변신을 했다. 아마 최초의 변신 로봇이 아닌가 싶다.
소를 골짜기에 풀어 놓고 소풀 베다가 잡은 뱀은 할아버지 보신용으로 꿀꺽! 지금 뱀을 보면 그렇게 잡을 수 있을까.
친구들과 밤 서리를 갔다가 주인에게 들켜 나무 위로 도망쳐 숨죽이고 숨어 있던 일, 논에 볏단 쌓고 지게로 무거운 볏단 나르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벼 타작하며 즐겁게 일하던 일, 이 모든 일이 어제 일인 양 생생하다.
겨울에 논에 물대고 얼려서 탄통 뚜껑에 나무를 얹어 만든 앉아타는 스케이트의 묘미! 팽이치기, 자치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모두가 치기네!
어머니께서 큰가마 솥에 하루 종일 불을 때면 엿이 되기 전에 조청이 만들어진다. 화롯불을 옆에 놓고 취떡을 찍어먹는 맛이란 이 세상 최고였다.
한번은 뒤뜰 김칫독 옆 조청단지 발견하고 부모님 몰래 한 숟가락 입에 넣으려다 인기척에 놀라 굴뚝 뒤에 숨었는데 하필이면 쥐덫 위에 앉아 중요한 부위가 덫에 걸리는 일도 있었다.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온 할아버지가 황급히 풀어주신 일은 지금도 절로 웃음이 난다. 언제 또 그 조청맛을 볼 수 있을지.
내가 영화를 처음 접해 본 곳은 남면 용하리에서 천막을 개조해 만든 가설극장. 돈이 없어 들어가진 못하고 끝날 시간 쯤 천막을 걷어 낼 때 잠깐씩 볼 수 있는 장면이 너무 흥미로워 매일 찾아가기도 했다. 텔레비전이 흔하지 않았던 때라 밤이면 스피커 하나에 기대여 온 가족이 연속극 들으며 장면장면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그때 상상력이 많이 자란 것 같다.
마당 끝 개울가에서 사기요강 닦고 양손으로 돌리며 장난하다 깨트려 혼나기도 하고 어머니와 산에 약초 캐러 갔다가 길을 잃어 산골짜기에서 ‘엄마!’하고 부르면 반대편에서 다시 ‘엄마!’하고 메아리 쳐오는 소리는 지금도 아득히 들?! ?는 것만 같다.
중학교는 읍내에 있는 양구중학교에 다녔는데 중2때 친구가 유도장에 가보자 해서 가보니 체육관 반쪽은 태권도, 반쪽은 유도장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때 흥미를 느껴 시작한 유도가 나를 유도인으로 만들었다. 운동이 끝나면 막차가 없어 20리 밤길을 걸어서 다녔다. 가끔은 지름길이라 산을 넘어 다녔는데 호랑이가 나올까봐 한손에 돌멩이를 꼭 쥐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은 작전 중인 군인들한테 포위되어 심문을 받기도 하고 이상한 물체에 놀라기도 했지만 눈 오는 한밤 중 뚝방 길 위에 서서 책가방, 도복 내려놓고 올림픽 금메달 따는 장면을 상상하며 환희에 젖을 때의 짜릿함이란.
지금도 산책을 하며 상상경영하는 습관이 그때부터 몸에 밴 것 같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해 보려는 성격도 그 시절 먼 길을 다니며 훈련된 정신력이 바탕이 되어 주고 있다.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아침 일찍 봉의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정상에서 양구 쪽을 바라보며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되새기곤 했다. 내 고향 양구는 나에게 정신적 어머니와 같다. 언제나 정겹고, 그립고, 따스하게 나를 품어줬다. 서울에서 사업하면서 벅차할 때도 고향 한번 내려가 옛 추억이 있던 장소를 한번 둘러보면 피로가 풀리고 고향 어르신들의 따뜻한 격려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큰 아들이 아시안 게임 동메달 획득했을 때도, 얼마 전 부족한 내가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받았을 때도 고향분들이 앞장서 축하 현수막을 걸어주셔서 큰 감동을 했다. 지금도 그 현수막 몇 개는 잘 간직하고 있고 사진에 다 담아왔다. 축하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서울 회사까지 오셔서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회사나 더 키우라며 격려 해주신 군수님을 비롯한 고향의 선후배와 어르신들. ‘고향의 정이 이런 것이구나’ 새삼 느껴진다.
모교인 양구중학교에서 후배들에게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 받았을 때의 설렘. 그때 후배들에게 ‘지금은 감성이 경쟁력이다’라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후배들은 양구의 소중한 자연 속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성이 길러지니 얼마나 큰 이익인가.
우리회사 경영 모토가 동화 같은 기업이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 회사의 경쟁력이 되었다. 동화 같은 회사는 동화 속 나의 고향에서 시작된 것이다.
명절 때가 되면 직원들에게 고향의 힘을 느끼고 한껏 얻어 오라고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직원들도 고향이 주는 에너지로 충만하길 바라서다.
이제는 작은 힘이나마 고향에서 얻은 은혜를 갚고 싶다. 그래서 명절 때면 1200여명의 회사 직원들과 함께 고향 농특산물을 이용하고 있다.
늘 받기만 했던 나의 고향.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감사할 따름이다. 그 시절 동료와 후배, 선생님 그립고 보고 싶다.
나의 고향 양구는 늘 그 자리에서 따뜻한 어머님의 품처럼 날 지켜봐주고 있고 나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의 고향 양구여. 영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