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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하늘엔 추색(秋色)이 완연 하다. 하늘에서 맑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가로수(街路樹)도..... 집들도....... 달리는 차(車)도........
걸어가는사람들도....... 유난히 반짝여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여름은 무덮고 지겨웠어도 가버린지금, 서늘한 발끝이 그 열기를 아쉬워한다.
퇴색 되어가는 은행나무 잎사귀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이어졌다 끊어졌다한다.
9月에 내린비니 분명 가을비라 불러야 하겠지? 그런데 아직도 가을비라 부르기에는 뭔가 미련이 느껴지는 심사(心思)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낮의 햇볕아래서는 여름을 착각 하다가도, 조석으로 느껴지는 냉기(冷氣) 에서는 가을을 실감하는 현실속에서, 나는 가을비를 가을비라 부르기를 겁내는 것이다.
나이를 의미 하는가 ? 하고싶은 일에비해 다채워지지않는 그릇을 들여다보며, 달이가고 해가바뀌는 것을 두려워 하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무었하나 이루워놓은것없이, 또 한해의 가을이 찾아드는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절감(切感)하다.
정말 가을이란 솔직한 季節인 모양이다. 모든걸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마니 말이다.
황금빛열매도...... 색채(色彩)도...... 그리고 노태(老態) )되어가는 내자신의 볼상싫은 모습마져도 ... ... ...


따사로운 가을햇볕 ... 그것이 그렇게 정답게 느껴질수가 없다.
엷은 볕속에 내한손을 내밀어본다. 한참 그러고 있으니 익어가는 가을의 열기(熱氣)에 손의 힘줄이 파아랗게 부풀어 오른다.
흔히들 가을은 결실의 季節이라 일는다. 뿌린씨를 거두워 들이는거다. 그렇다 ! 뿌린씨....... 풍성(豊盛))한 수확(收穫) .....
첫째 씨를 뿌렸어야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로선 할말이없다. 억지로라도 뭔가 마음에 뿌린게 있겠지 하지만, 솔직한말로 이거다하고 내놓을게없다.
그리하여 가을은 그화창한 가을과는 대조적으로 나에겐 우울하고 초조한 季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한편으로는 나자신의 부족한점을 깨우치게 하는것도 이때여서, 季節의 윤회와 時間의 여울목이 고맙게 여겨지기도한다.


사시장춘(四時長春) 변함없고 어떤고비도 없다면 입어도 입어도 잘떨어지지않는 나이론 옷처럼 식상(食像)하리라. 타성에젖어 그냥 무미건조 하게 지나기 십상이라라.
형태나 만족엔 발전이 있을수 없다 끊임없는 목마름과 고뇌가 있을때 비로서 人間은 자신의힘으로 딛고 일어서서, 앞을 헤쳐가려는 의욕과 능동성이 생기게되기 마련이다.
새로워 져야 하겠다는 의지는 人間의 속성 이리라. 人間도 단풍처럼 물들고 낙엽처럼 사라지는 존재다. 그러나 외형은 사라질지라도 정신적 뿌리는 영원한 새싹을 돋게할 수가 있다.


뿌리깊은 삶은 오늘 침체의 늪속에서 섰다고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時間이가면 새싹을 돋게하는 저력과 희망을 지니고있다.
종미(終尾)는 시작의 첫머리이다. 유난히 더위에 지쳤던 지난 팔월을 보내고, 이구월을 한층 값지게, 뜻깊게 맞이하도록 옷깃을 여미게 하는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그 경계선 에는 응당 자신을 들여다보는 진지한 추구가 있어야한다. 나는 주어진 현상을 뛰어넘는 자기 확신을 위해 지상의 열매들이 안으로 응집(凝集) 하는 깊은 의미를 생각해본다.
거시적 인 세계에서 불거시적인 세계로 상상(想像)의폭을 넓혀갈 때, 창밖에 죽은 듯이 서있는 나무들에 속깊이 흐르는 은밀한 이야기가 흐른다.
릴케시의 가을에서 처럼 , 나뭇잎이 시나브로 떨어져 내리는 이당혹한 季節.... ....
오직 스스로를 추스리려는 생동감을 느낄 때, 우리는 무작정 초조한 세월의 급류에서 나를 지킬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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